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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reciation


나는 apprecication이라는 영단어를 좋아한다.

이 단어는 한국어로는 크게 두 가지 의미 1) 감상하다, 2) 감사하다 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어로는 유사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두 가지의 의미가 왜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단어시험을 앞두고 있던 꼬맹이시절에 고민해 봤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내가 얻은 결론과 깨달음이 나로 하여금 appreciation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만든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같은 장면을 보지만, 사람에 따라 그 감상은 천차만별이다. 황폐한 풍경 속에서도 안간힘을 쓰며 싹을 틔우는 그 생명력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황폐함 그 자체에 대한 씁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큰 희노애락 없이 무념무상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부터 무언가를 보자마자 머리에 입력되는 생각과 감정이 너무 과다하여 process하는 과정이 괴로웠다. 그래서 한때는 무엇을 보더라도 별 느낌이 없는 조금은 무던한 사람이 세상 살기 좋겠다고 부러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appreciation이라는 말 뜻 그 자체처럼, 어떠한 "것(thing)" 안에 숨겨 있는 많은 "것(something)" 들을 감상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에 대해 점점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같은 것을 보지만 같은 감상을 하지는 않는다. 감상이 많은 사람의 세계관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깊고 넓다. 누군가에겐 짧은 인생, (기형도의 시 처럼) 인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고 느껴지는 이 세계관이 누군가에게는 깊고 넓고 무한하다.

누군가는 100살을 살았지만 그 감상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60살을 살고 가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관에 있는 구석 구석의 모든 것들을 충분히 감상한 사람보다 더 많이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어떤 대상에 대한 감사는 그 감상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느낀다.


내가 아주 사랑하는 공간이 있다. 나는 그 공간의 작은 소품 하나,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 향기, 소음 등등 오감과 육감에 걸쳐 모든 작은 부분에 대한 감상을 놓치지 않고 사랑한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신기해 하면서도 귀여워하기도 한다.

이번에 포항을 방문한 친구들에게 이 공간을 내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들어봐 hear me out!

이 카페는 일요일 아침이 연상되는 곳이야. 일본에서 보던 동네 작은 카페 같은 느낌이야.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갓 구운 빵 향기가 나고, 동물의 숲 주인장 같은 세상 무해한 사장님이 계셔

그 사장님은 귀여운 빵모자를 쓰고 있고, 진열장은 가지런하고 단정하게 꾸려져 있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의 인테리어가 메인이야.

메뉴는 많지 않아, 그치만 유기농으로 만든 빵으로 맛있는 메뉴 2~3가지만 팔아.

한국에서 유행하는 부드러운 빵이 아니고 살짝 쫄깃한 식감의 빵이야.

거기서 너희들은 오늘의 스프를 먹어야해. 직접 scratch부터 만든 스프야.

메뉴를 주문하고 앉으면 창가에서 햇빛이 부서져 내려.

기다리고 있으면 조금 천천히 하지만 정성스레 메뉴가 준비돼.

모형처럼 완벽한 모양으로 크로와상 샌드위치가 나와.

치즈도 토마토도 루꼴라도 너무 정갈하고 신선해.

(산미가 없어 아쉽지만) 고소한 커피와 함께 준비된 메뉴를 먹고서

나오는 길에 사워도우를 포장해야해. 그러면 정말 귀여운 봉투에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주셔.

이곳을 다녀오면 정말 기분이 좋아져. 행복한 하루가 시작이 돼.


친구들은 처음엔 1) 빵냄새에 집중했다가 2) 빵모자 3) 스프 4) 창가 햇빛으로 전환하면서 천천히 빌드업 되는 이 소개를 너무나도 웃겨했다.


그리고 오늘 다 같이 이 까페를 가 보았는데, 정말 내가 설명한 그 모습 그대로 어느 하나 허트러짐 없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 행복해 했다. (사장님이 빵모자를 안쓰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쓰고 계셨음..ㅎㅎ)

커피와 빵을 즐기고 나서 모두의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행복해했다.


"너네 꼭 착한 사람들한테만 여기 알려줘야해.. 여기가 오염(?)되지 않게, 이 vibe가 지속될 수 있게 지켜주고 싶어"

나는 신신당부 했고, 친구들도 웃으며 끄덕였다. -만약에 친구들이 심드렁하거나, 구석구석의 귀여움을 예쁨을 충분히 appreciate 하지 않았다면 공감(appreciation의 세번째 뜻)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시당초 그런 사람을 친구 삼지 않았겠지만..-

같은 한시간의 인생, 같은 공간에서의 시간 소비 이지만 우리의 세계관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나는 감사는 감상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감상할 수 있음이 곧 감사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생각도 감정도 많은 나의 모습이 밉기도 컴플렉스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감상"할 수 있음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I appreciat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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