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은 서울 태생이다. 그런데 나와 대화 할 때는 완전히 100% 제주어로 말한다.
구두로 이야기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등 메세지로 이야기 할 때에도 제주어로 대화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고 이해 시키는것, 그리고 남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 어떻게 보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 이기도 하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할 무렵 제주도 태생의 나에 대해 궁금한점이 참 많은 남편을 보며 제주도 사투리를 조금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제주어는 언어학적으로 예전 조선말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단어 자체가 현대어와 아주 다른 경우에 해당하고, 현대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제주어는 서울말과 다른 것은 어미에서의 활용에서의 차이만 발생한다.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순전히 내가 분석한 것으로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제주어는 크게 두가지 활용 측면에서 동사의 활용이 다른데 그것은 문법적으로 보았을 때 영어의 ~p.p. 와 ~ing로 구분하면 이해 하기가 쉽다.
예를 들면 내가 상대방에게 현재 밥을 먹고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하면, 서울말로는 밥 먹었어? 라고 물을 것이다. 이 경우 제주어의 어미는 어미가 탈락하며 “ㄴ”이 붙는 방식을 따른다.
밥 먹어+ㅆ+어? —> 밥 먹어+ㄴ = 밥 먹언?
만약, 상대가 지금 밥을 먹고 있는 중인지(~ing)가 궁금하다면
밥 먹으다 —> 밥 먹으+“맨” ? 하고 물으면 된다. ~ing=~(하)맨 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그럼 응용해 보자.
지금 내가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면?
= 공부하맨.
아까 전 까지 공부를 한(p.p.)상태라면?
= 공부핸.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 뭐하맨?
아까 전 까지 뭘 했는지 궁금하다면?
=뭐핸?
이걸 응용할 수 있다면 현재 20~30대가 사용하는 제주어에 80% 가깝게 구사할 수 있다고 본다. 정서방은 나머지 20%를 채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나와 사귀기 시작한 2014년 부터 결혼한 해인 2017년 까지는 남편은 제주도 20~30대 수준의 제주어를 구사했다.
문제는 결혼 이후에 우리 가족들이 사용하는 고급 제주어에 입문하게 되면서이다.
그때부터는 단순한 어미의 변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어 자체를 완전히 새로 숙지 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래서 남편은 2017년 부터 아이폰 메모장에 “정서방의 제주어 사전”을 만들고, 우리 가족들이 무심결에 대화하면서 나오는 모든 제주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간 여러번 핸드폰을 바꿨지만 아이폰 속 메모장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업데이트 되었다. 하나 둘 단어가 쌓이기 시작하여 8년이 지난 현재 정서방의 제주어 사전은 스크롤을 한참 해도 한번에 읽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문서가 되었다.
제주어, 발음기호, 활용문장 세 가지로 구성된 이 정서방의 제주어 사전은 -우리 친구들의 표현에 따르면- 사랑이 형상화 된 모습이라고 한다.
나와 우리 가족들은 주섬주섬 단어를 모으고 단어장을 업데이트 하는 정서방이 귀엽기만 했는데, 친구들의 눈 (보다 객관적인)을 빌어 보니 단순히 귀여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최근 들어 알게 되었다. 며칠 전 남편에게 왜 제주어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냐고 물었는데, 남편의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너에게는 한 번도 이야기 하지 못했는데, 사실 제주도 말을 배우는 이유는 그 언어를 알아야 너의 삶과 가족을 이해하고 완전히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번외: 사실 남편과 나는 제주어로 100%이야기 한다기 보다는, 우리 끼리 만든 새로운 언어를 사용한다. 일명, 제본어..? (제주어와 일본어가 섞인 언어) 아마 우리 끼리 대화한 메세지를 보더라도 아무도 (제주도 사람 포함)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파워N이라 별놈의 상상을 다 하는데, 만약 누군가에게 납치가 된다면 메신저로 보낼 단어도 서로 정해놨고, 만약에 지진이 나서 모든 통신이 끊긴다면 어디에서 둘이 만날지도 다 정해 놓았다... 요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따로 포스팅 하겠다.
Commentaires